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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K


김치찌게의 무말랭이 일기 | Diary

최근에 들어서 내가 매우 '안좋은' 버릇과 습관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는 나에겐 너무 당연한 일과 생각들이었는데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너 대체 왜그러냐" 라는 것의 기묘한 그것이었다. (정신병은 아니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는 나랑 수십 년을 같이 지내온 가족보다, 수십 일을 같이 지내는 형이 짚어내기 편한 것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겐 매우 안좋은 습관이란 것은 무언가 '남는 것'을 잘 못본다는 것이었다. 요리로 예로 들면, 집안에 남는 재료가 있다거나, 혼자 우두커니 왕따로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사정없이 함꼐 모아 버무리거나 끓인다. 최근에 단행했던 작품으로는 김치찌게를 끓이는데, 무말랭이의 여분이 애처롭게 보여 함꼐 담아 끓여냈고, 된장찌게에 갖은 야채가 다들어가는데, 브로콜리가 안들어간 것 같아 큼직하게 썰어내어 조합했다. 소세지를 볶을 때도, 남겨진 재료가 있으면 함께 볶는다. 늘 그런 식이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극도의 근검절약이 몸에 벤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 요리에 이상한 조합을 강요했다. 물론 그 조합은 처음부터 고도로 설계된 것은 아니며, 어찌하여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남겨진 녀석에 대한 배려로 시작된 Plan B 였다. 하지만 그 Plan B 는 번번히 발생했고, 이는 내게 습관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남겨진 재료에 대한 배려.

나는 냉장고에 식재료가 남아서 버리게 되는 상황이 싫었고, 어떻게든 끝을 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섰다. 그렇게 끝을 내야 직성이 풀렸으며, 이는 가끔 음식을 "끝장"내기도 했다. 실제로 무말랭이가 어설프게 섞여들어간 김치찌게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맛에 묘한 식감이 조합되어 김치찌게의 본연을 잃게 했다. 난 그렇게 남겨진 식재료를 끝냈지만, 음식 맛은 도리어 망쳐내기도 했다. 

무언가 남겨진 '여운'이 싫었다. 

샴푸가 남으면 어떻게든 물을 넣어 행궈서라도 다 사용해야 했고, 입다 낡은 옷이 있으면 걸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너덜너덜해져야 직성이 풀렸다. (오해하지 마시라, 너덜너덜해진 옷은 집에서 입는다. 밖에서 보이는 못이 늘어진 티셔츠는 원래 그렇게 생긴 옷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의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 존재의 가치와 기능들이 충분히 끝까지 수명을 다할떄까지 발현되어야 올바른 것이라 믿으며 30년가량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이 같은 삶의 태도는 크게 낭비하지 않고, 완벽함을 추구해내는 것이 맞닿아 있으니 괜찮다라고 착각을 반복하다 오늘 책을 보면서 불현 느꼈다. 미국에 들고온 몇 권의 책들이 있는데, 그중에 큰 공감과 재미를 얻지 못하는 책들도 더러 있었다. 몇 권 안되는 책을 업어왔기에 일단은 소중히 봐야한다 생각했기에 절반을 넘겼고, 그 뒤는 오기였다. 일단은 책을 끝내자라는 재미도 동의도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책을 '꾸역꾸역' 넘겨내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끝냈을 때 나는 정말 행복과 희열을 느꼈는가. 그 행위는 내게 단지 "책을 끝냈다"라는 아주 작고 사소한 기쁨의 부스러기만 줄 뿐이었고, 이에 난 번쩍했다. 

내가 흥미를 잃은 책에 우격다짐으로 넘기던 페이지는,
김치찌게에 들어간 무말랭이였다. 

그때, 그 페이지들은 읽히지 않는 편이 좋았고,
김치찌게에는 무말랭이가 없는 편이 나았다.

남겨진 사실과 여운, 그리고 환영받지 못할 추억과 기억들은 그 자체로 적당히 덮고 수습하는 편이 옳다. 그 부족한 무언가를 반드시 채우려 하면 대게는 본질이 훼손된다. 그 채우는 과정을 해야지만 내 마음이 편하고, 그렇게 끝을 내야 개운할 것 같은 몹쓸 습관은 무언가의 완결성을 저해하고 망가뜨린다. 오히려 거친 절단면을 남기고 매듭짓는 편이 훨씬 아름답다.

요리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무언가 더해야 할 것 같을땐, 그 때가 진짜로 돌아서야 할 순간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무언가 안녕할 때, 적절하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그 자렇게 돌아서는 편이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제부터 요리는 욕심내지 않고 어울리는 재료만 올바르게 손질하여 담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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