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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husiastic Positive Intuitive & Critical MK works @ Platypus
by MK


달리기 일기 | Diary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너무 급하게 달리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 또는 너무 느리진 않은지,

내 호흡은 버텨낼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호흡을 나는 신경쓰고 있는지,

주위의 손가락질과 무시에 초연할 수 있는지,
그저 내 직관과 확신에 자신하는지,

저 앞에 결승선 너머로 나는 확신하는지,
그 결승선은 그저 찰나의 과정은 아니었을지,

그 모든 불편한 관념, 선입견과 환상을 등지고,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미련과 후회, 아쉬움을 남기기 싫어서,
어떤 이성적 판단을 덮고 내달렸다.

그렇게 달려낸 후에, 
나는 후일이 두렵다.

때로 울컥 밀려오는 감정의 교차가 겁나고,
문득 불현 생각나는 지금의 기억이 두렵다.

그래, 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면, 
그것으로 보상은 되었다.
그리고 그 외에 모든 것은 그저 덤이다.

지금은 그저 달리자. 숨이 턱에 차도 좋아라 달리자.

김치찌게의 무말랭이 일기 | Diary

최근에 들어서 내가 매우 '안좋은' 버릇과 습관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는 나에겐 너무 당연한 일과 생각들이었는데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너 대체 왜그러냐" 라는 것의 기묘한 그것이었다. (정신병은 아니니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는 나랑 수십 년을 같이 지내온 가족보다, 수십 일을 같이 지내는 형이 짚어내기 편한 것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겐 매우 안좋은 습관이란 것은 무언가 '남는 것'을 잘 못본다는 것이었다. 요리로 예로 들면, 집안에 남는 재료가 있다거나, 혼자 우두커니 왕따로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사정없이 함꼐 모아 버무리거나 끓인다. 최근에 단행했던 작품으로는 김치찌게를 끓이는데, 무말랭이의 여분이 애처롭게 보여 함꼐 담아 끓여냈고, 된장찌게에 갖은 야채가 다들어가는데, 브로콜리가 안들어간 것 같아 큼직하게 썰어내어 조합했다. 소세지를 볶을 때도, 남겨진 재료가 있으면 함께 볶는다. 늘 그런 식이었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극도의 근검절약이 몸에 벤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 요리에 이상한 조합을 강요했다. 물론 그 조합은 처음부터 고도로 설계된 것은 아니며, 어찌하여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남겨진 녀석에 대한 배려로 시작된 Plan B 였다. 하지만 그 Plan B 는 번번히 발생했고, 이는 내게 습관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남겨진 재료에 대한 배려.

나는 냉장고에 식재료가 남아서 버리게 되는 상황이 싫었고, 어떻게든 끝을 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섰다. 그렇게 끝을 내야 직성이 풀렸으며, 이는 가끔 음식을 "끝장"내기도 했다. 실제로 무말랭이가 어설프게 섞여들어간 김치찌게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맛에 묘한 식감이 조합되어 김치찌게의 본연을 잃게 했다. 난 그렇게 남겨진 식재료를 끝냈지만, 음식 맛은 도리어 망쳐내기도 했다. 

무언가 남겨진 '여운'이 싫었다. 

샴푸가 남으면 어떻게든 물을 넣어 행궈서라도 다 사용해야 했고, 입다 낡은 옷이 있으면 걸레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너덜너덜해져야 직성이 풀렸다. (오해하지 마시라, 너덜너덜해진 옷은 집에서 입는다. 밖에서 보이는 못이 늘어진 티셔츠는 원래 그렇게 생긴 옷이다!) 다시 얘기하지만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의 습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 존재의 가치와 기능들이 충분히 끝까지 수명을 다할떄까지 발현되어야 올바른 것이라 믿으며 30년가량을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이 같은 삶의 태도는 크게 낭비하지 않고, 완벽함을 추구해내는 것이 맞닿아 있으니 괜찮다라고 착각을 반복하다 오늘 책을 보면서 불현 느꼈다. 미국에 들고온 몇 권의 책들이 있는데, 그중에 큰 공감과 재미를 얻지 못하는 책들도 더러 있었다. 몇 권 안되는 책을 업어왔기에 일단은 소중히 봐야한다 생각했기에 절반을 넘겼고, 그 뒤는 오기였다. 일단은 책을 끝내자라는 재미도 동의도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책을 '꾸역꾸역' 넘겨내고 있었다. 그렇게 책을 끝냈을 때 나는 정말 행복과 희열을 느꼈는가. 그 행위는 내게 단지 "책을 끝냈다"라는 아주 작고 사소한 기쁨의 부스러기만 줄 뿐이었고, 이에 난 번쩍했다. 

내가 흥미를 잃은 책에 우격다짐으로 넘기던 페이지는,
김치찌게에 들어간 무말랭이였다. 

그때, 그 페이지들은 읽히지 않는 편이 좋았고,
김치찌게에는 무말랭이가 없는 편이 나았다.

남겨진 사실과 여운, 그리고 환영받지 못할 추억과 기억들은 그 자체로 적당히 덮고 수습하는 편이 옳다. 그 부족한 무언가를 반드시 채우려 하면 대게는 본질이 훼손된다. 그 채우는 과정을 해야지만 내 마음이 편하고, 그렇게 끝을 내야 개운할 것 같은 몹쓸 습관은 무언가의 완결성을 저해하고 망가뜨린다. 오히려 거친 절단면을 남기고 매듭짓는 편이 훨씬 아름답다.

요리든,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무언가 더해야 할 것 같을땐, 그 때가 진짜로 돌아서야 할 순간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내 머릿속에는 도무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별의 대부분은 그대로 영원한 이별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 입 밖에 내지 못한 말은 영원히 갈곳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에서

무언가 안녕할 때, 적절하게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그 자렇게 돌아서는 편이 훨씬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제부터 요리는 욕심내지 않고 어울리는 재료만 올바르게 손질하여 담아내야지.)

새해를 맞이하며 일기 | Diary

2010년 12월 31일, 나는 병원에 있었다. 그날 어머니께서는 암 절제 수술을 받으셨고, 병원에서 하얗게 밤을 세웠다. 적막하고 고요하게 2011년을 맞이했고,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고, 우리 어머니도 훨훨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그래, 내가 겪어냈던 2011 작년에는 내 삶에 그럴싸한 마일스톤이 제법 있었다.

*. 가족이 꽤 오랜기간 병원에 있었다. 짧게 잘려나간 어머니가 거울을 보시며 우는 모습이 가슴 속 깊이 생생했다. 그 어머니의 짦은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며 위로했다. 그리고 내 주위 누군가가 아픈건 정말 싫다라고 수백번 외쳤다. 너무 슬펐다.

**. 또한, 회사를 관두고 나와서 일을 꾸렸다. 생각처럼, 꿈처럼, 그리고 그림처럼 좋은 일들만 펼쳐지진 않았다. 때론 힘들고 답답할때도 더러 있었다. 나는 이 속에서 내가 얼마나 하찮고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늘 발견하며 살았다. "아직 멀었구나 너" 이러면서-

***. 그리고 더 크게 꿈을 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을 밟았고, 늦깎이 유학생 공부하듯 하나하나 깨쳐가며 살고 있다. 내 짧은 영어가 싫었고, 부족한 국제 감각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림에 나름 예민하고 극성스런 성격이 부담됐다. 내가 작아졌다.

이러한 생각을 겪는 과정에서 2011년은 순식간에 페이지가 덮였다. 사실 올해 2011년의 마지막 순간은 좀 시시했다. 형들과 저녁 식사와 간단한 술한잔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주차를 하지 못해서 같은 곳을 계속해서 배회했다. 그렇게 삼십여분 차안에서 갇혀있을 때, 갑작스런 폭죽소리와 요란한 사람들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Happy New Year!"

형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아요, 많이 받아라 인사를 주고 받으니 2011년이 덮이고 2012년이 열렸다. 예상치 않게 다가온 2012년.작년말 병원에서 그렇게 절실하게 빌었던 소원이 이뤄지기라도 한 양, 2012년이 도착했다. 그리고 새 페이지를 새롭게 적어내자고 손짓한다. 새해를 맞이하야, 거청한 목표와 소원을 담아내기에 앞서 누군가 내게 했던 말이 좋았다.

"무탈하자." 

올 한해는 무탈했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상처받는 일이 덜했으면 좋겠다. 절대 명제와 같은 무탈하게 살되, 몇가지 이루고자 하는 일들을 나열하자면...

*. 올해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자. 나 혼자의 힘으로 되는게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인 만큼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 꿈과 희망이 날개를 달아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이 먼 미국땅에서 훨훨 날아서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으면 좋겠다.

**. 올해 다시 책을 써보자. 지금의 나날은 틀림없이 빛으로 치환될 날이 있기에, 나날의 기록과 배움이 재생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작년 말에 막연하게 구상했던 이야기를 다시 담아내기로 결심했다. 이 또한 올해 안에 해내고 싶다.

***. 그리고 그 무엇보다, 건강하자. 아픈건 너무 싫다.

2012년의 페이지를 힘차게 열어보자.

추억과 미래 일기 | Diary

오늘 서울 사무실로 마지막 출근을 했다. 도착과 함꼐 커피를 내렸고, 잔은 따뜻해졌다. 별다를 것도 없는 일상의 오후가 내게 다르게 느껴졌고, 괜스레 기분이 울컥했다. 내일이면 먼 곳으로 훌쩍 떠날 것을 알기에 지금의 잔잔한 일상이 짠했다.

맞바람을 가로 맞으며 회사에 도착하고, 옷을 걸고 커피를 내린다. 난 늘 그랬듯이 물 양은 적게, 커피양은 많게 원두커피 머신을 조절한다. 그렇게 내린 진한 커피에 뜨거운 물을 적당히 담아낸 후 첫 잔을 마셨다. 그렇게 하루를 여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커피잔 만큼은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머그잔이었다. 그럴싸한 이야기와 감동이 담겨있는 사연은 아니지만, 꽤 값진 추억의 상징인만큼 내 하루하루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그래, 시간을 '보내면' 추억이 된다는 말처럼, 내 나름의 시간을 차곡차곡 일상에 녹여서 쌓아내고 있었다.

시간을 '나누면' 미래가 될법도 했지만, 그저 가슴 한 켠에 좋은 기억으로 맴돈다. 첫 눈이 내리면, 그 눈이 내리는 대지는 하얗게 물든다. 쌓인 눈의 깊이가 소박하고 얕을 때, 나는 첫 눈의 감흥이 못이겨 뛰놀며 눈을 흐트러 뜨렸다. 시간은 지나고, 엉망일 것 같던 그 흔적 위로도 눈은 쌓이고 추억도 쌓인다. 그렇게 내 소중한 기억의 단편은 내 마음과 편의대로 아름답게 각색되고 흘러간다.

내게 괜찮다며 다독이던 수많은 날들, 
더 나은 내일을 기다리며 긍정하던 내게... 시간은 유일한 힘이었다.
시간을 보내면 (즐겁고 건강한) 추억이 되었기에, 난 (이제서야) 그 추억을 감사하고 사랑한다.

단, 지금부터의 앞날엔 시간을 '나누고' 싶다. 
내가 만들어내는 하루하루를 '보냄'이 아닌 '나눔'으로 이끌어내고 싶다. 그 나눔으로서 추억이 아닌 미래와 내일로 다듬고 싶다.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니고, 수년동안 공부를 하고자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짧은 시간일 뿐이다. 더 큰 꿈을 그려내기 위한 짤막한 단편 이야기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울컥했다. 벤처(Venture)가 어드벤처(Adventure)로 매듭짓게 되는 추억 대신, 내일과 미래를 그려내자. 그리고 훨훨 뛰고 날아보자. 그 뒤에 한없이 웃어내자.

잠시 활동을 접습니다. 미분류

잠시간 블로그 활동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약 3개월 가량 사업차 미국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나름 짬을 내서 글을 쓰고는 싶지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배우고 늘리고 가끔 깨진 후에 더 건강한 사람으로 변해서 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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